[현장 리포트] 화려한 옛 명성 뒤로한 ‘춘천 신포 형석광산’… 배터리·반도체 시대의 새로운 심장으로 뛸까

춘천 사북면 신포리 현장에서 주식회사 보고의 활약이 기대되는 지금...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수많은 산업 현장의 흥망성쇠를 목격했지만, 이곳 신포리 광산이 주는 감회는 남다르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산업의 소금’이라 불리는 형석(Fluorite)을 캐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형석은 쇳물을 녹일 때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철 공정의 필수 부자재다. 당시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신포리 땅속에서 파낸 형석이 있었다. 일본 등 해외로 수출되어 외화를 벌어들이던 대한민국 자원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값싼 중국산 광물이 밀려오고 국내 채굴 여건이 악화되면서, 찬란했던 신포광산의 불빛도 하나둘 꺼졌다. 광부들이 떠난 자리는 적막만 남았고,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던 화려한 기억은 빛바랜 역사책 속 한 줄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신포광산의 ‘미래’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유는 형석이 가진 핵심 가치의 변화에 있다. 과거에는 제철용 보조 광물에 불과했던 형석이, 이제는 21세기 첨단 산업인 '반도체'와 '이차전지(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불소(Fluorine)의 원료로 신분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를 세정하는 데 쓰이는 에칭가스(불화수소)와 전기차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전해액, 양극재 바인더 등에는 모두 불소 성분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 첨단 불소 소재의 원료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탓에 공급망 위기가 올 때마다 국가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국내 매장 광산들이, 이제는 '자원 안보'라는 거대한 국가적 생존 전략 아래서 새로운 가치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강원연구원의 한 자원공학 전문가는 "신포리 일대의 형석은 품위(광물 내 유효 성분의 함량)가 우수해 현대적인 정제 기술을 도입한다면 충분히 고부가가치 첨단 소재의 국산화 기지로 활용할 수 "라며, "다만 단순히 광물을 캐내는 1차 산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근 산업단지와 연계해 '정제-가공-소재 부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

재가동을 가로막는 여타 광산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 '지역 사회와의 갈등'인 반면, 이곳 신포리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자원 개발을 둘러싼 지역 분쟁이 치열한 여느 현장들과 달리, 신포리 마을 주민들은 광산 재가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과거 신포광산과 함께 마을이 가장 풍요로웠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광산의 부활이 곧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청년들을 다시 불러모을 유일한 돌파구라는 점에 주민 전체가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열린 수용성과 적극적인 지원이야말로 신포광산이 가진 가장 강력한 연료인 셈이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친환경 지하 채굴 기술과 철저한 오염 방지 대책을 도입해 주민들의 신뢰와 청정 환경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며, 세계 광물 시장의 가격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정교한 제도적·금융적 뒷받침이 신속히 따라붙어야 한다.

어둠이 걷히고 햇살이 사북면 신포리 계곡을 비추자, 폐갱도 주변의 바위들 사이로 희미하게 보랏빛을 띠는 형석 원석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대한민국 산업화의 ‘소금’ 역할을 했던 신포의 형석이, 다가오는 미래에는 첨단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방패’이자 강원도의 새로운 ‘심장’으로 다시 뛸 수 있을까.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미래를 기다리는 신포광산의 시간은 이제 막 새로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주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등에 업은 만큼,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들의 혜안 있는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